이제는 아시아 이류라는 말보다 '아시아 삼류'라는 말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남자배구 대표팀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이란 우르미아에서 열린 제22회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대회 6강에서 중국에 세트 스코어 1-3(25-21 22-25 26-28 18-25)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장징인, 장추안, 왕허빈 등 주축 선수가 대거 빠진 중국을 상대로 첫 세트를 따내기는 했지만, 높이(블로킹 5-16) 싸움과 범실(36-29) 관리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무너져 내렸다.
중국 2군 선수들을 상대로 완패한 것도 아쉽지만, 패배보다 아쉬운 것은 6강 진출 과정이다. 조별 예선 2경기와 12강 경기 등 3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뒷맛이 씁쓸했다.
F조 최약체였던 방글라데시를 셧아웃으로 격파한 것을 제외하고 시원한 승리를 거둔 경기가 없었다. 남자 대표팀(30위)보다 한 수 아래라 평가하던 파키스탄(54위), 인도네시아(58위)를 상대로도 치열한 접전을 펼치는 등 랭킹 차이가 무색한 접전이 대회 내내 이어졌다.
오는 9월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치른 2번의 국제 대회에서 나름대로 '최고의 전력'을 갖춰 대회에 임했다고는 하나, 경기마다 대표팀의 문제점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첫 번째 문제점은 세터와 공격수 간의 불협화음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국제 대회를 대비해, 지난 5월부터 합숙 훈련을 진행했음에도 주전 세터 황택의와 주포 허수봉-정지석의 손발은 맞지 않았다.
세터 황택의의 들쭉날쭉한 토스웍과 운영 능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다. 세터는 안정적인 토스웍으로 공격수의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내야 하지만, 황택의의 토스가 불안정한 탓에 공격수들이 시원하게 공을 때리기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격이 양 날개인 허수봉과 정지석에 집중되는 등 공격 루트를 다양화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대표팀의 경기력 자체도 기대 이하였다. 큰 점수 차의 리드를 잡고 있다가도 단시간에 집중력을 상실하며 우후죽순 범실을 쏟아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범실을 줄이면서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다 보니 약팀을 상대로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또한 서브 범실이 워낙 많아서 우리 서브 턴마다 경기 흐름이 뚝뚝 끊기거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펼쳐졌다.
현재 남자대표팀 감독을 맡은 임도헌 감독의 역량이 부족한 것도 대표팀 성적과 직결된다. 지난 2019년부터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고 있는 임도헌 감독은 여전히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구식 배구'만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임도헌 감독의 체제 아래 성적 향상은 이뤄지지 않고 국제 경쟁력은 더욱더 떨어지고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는 약체팀을 상대로도 고전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 대표팀이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세계적 강호로 거듭난 일본과 같이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먼저 선진 배구 트렌드를 우리 배구에 접목할 수 있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은 프랑스 대표팀 감독 출신의 필립 블랑 감독의 지휘 아래, 여러 방면에서 성장했다. 그 결과, 2023 발리볼네이션스리그 예선에서 10연승, VNL 3위에 오라 아시아 역대 최고 성적을 달성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과 달리 선수들이 세계 무대 진출에 소극적인 국제 경쟁력 약화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이다. 이시카와 유키(파워 발리 밀라노), 다카하시 란(베로 발리 몬자) 등 일본의 주포로 활약 중인 두 선수는 세계 최고 리그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리그에 몸담고 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해외 리그에 진출해 세계적 수준의 배구를 경험하면서 차츰 성장했고,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도 통하는 선수가 됐다.
십여 년간 한국 배구는 '변화'하지 않고 안주했다. 그 결과, 우리 대표팀은 점차 퇴보하며 아시아에서도 변방국이 될 위기에 처했다. 침체에 빠진 한국 배구가 '변화'를 통해 세계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