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즌을 앞두고 V-리그 남자부는 큰 변화를 맞았다. 외국인 감독이 대거 등장했다. 직전 시즌까지 외국인 감독이 지휘하는 팀은 대한항공과 OK저축은행 두 팀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종료 후 현대캐피탈, KB손해보험, 우리카드가 줄줄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면서 '외국인 감독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V-리그가 전례 없는 대형 변화에 맞닥뜨린 가운데, 올 시즌은 순위 경쟁 판도는 어떻게 흘러갈지 살펴보자.
1. 막강한 전력으로 우승컵 노리는 '2강'
-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지난 시즌 초반 최하위권을 맴돌던 현대캐피탈은 9년간 동행했던 최태웅 감독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후 빠르게 후임 감독 인선 작업에 돌입한 현대캐피탈은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끈 필립 블랑 감독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외국인 선수도 모두 교체했다. 공격력이 입증된 '쿠바 폭격기' 레오나르도 레이바와 204cm의 높이를 갖춘 중국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덩신펑을 영입했다. 이로써 현대캐피탈은 레오-신펑-허수봉으로 구성된 압도적인 공격력을 갖춘 삼각편대를 완성했다. 또한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대한항공 주전 리베로인 오은렬까지 영입하면서 수비까지 보완했다.
단숨에 대한항공의 대항마로 떠오른 현대캐피탈은 컵대회에서 강력한 공격력과 높이,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워 11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한 결과였지만, 김명관의 입대로 공석이 된 주전 세터 자리가 여전한 구멍이었다.
결국 현대캐피탈은 지난 9월 말 KB손해보험에 미들 블로커 차영석과 세터 이현승을 내주고 세터 황승빈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 팀의 아킬레스건인 세터 포지션을 강화했다. 이로써 완벽한 스쿼드를 갖춘 블랑 체제는 오는 19일에 개막하는 V-리그에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다.
- 대한항공 점보스
대한항공은 V-리그의 절대 1강으로 군림하며 전대미문의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 외국인 선수 링컨 윌리엄스의 부상 이탈과 대체 외국인 선수 무라드 칸의 부진에 시름했지만, 우승에는 문제가 없었다. 2024/25 시즌에도 여전히 강팀으로 꼽히는 대한항공은 올 시즌 통합 5연패까지 넘본다.
4년 간의 장기 집권 동안 선수단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던 대한항공이지만, 올 시즌은 변화가 크다. 토종 에이스로 거듭한 아포짓 스파이커 임동혁이 군대에 입대했고, 주전 리베로 오은렬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또한 2020/21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끈 요스바니 에르난데스, 이란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아레프 모라디를 영입했다.
전력 누수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요스바니가 가세하면서 공격력은 더욱 강해졌다. 여기에 각 포지션 별로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은 올 시즌도 우승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선수-유광우로 구성된 세터진의 노쇠화와 리베로 오은렬의 공백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가 우승 경쟁의 키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 봄배구 진출에 도전하는 '3중'
- 우리카드 우리WON
지난 시즌 우리카드는 아쉬움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꼴찌 후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외국인 선수 마테이 콕의 공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며 아쉽게 정규리그 준우승에 머물렀다.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다시 한번 우승컵을 노렸으나, OK금융그룹의 기세에 눌려 또 한 번 업셋의 굴욕을 맛봤다.
번번이 우승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우리카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지난 6년간 팀을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신영철 감독과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이란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외국인 선수 구성에도 변화를 줬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미시엘 아히, 이란 출신의 아웃사이드 히터 알리 하그파라스트를 품에 안았다. 이들은 코보컵에서 나란히 득점 1위, 공격 1위에 오르며 눈도장을 찍었다.
국내 선수진 구성도 좋다. 한 시즌 만에 팀의 주전 세터로 자리 잡은 세터 한태준을 비롯해, 김지한, 이상현, 김영준 등 어린 선수진이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급성장했다. 외국인 선수부터 국내 선수까지 빈틈없는 선수단 구성을 마친 우리카드가 파에스 신임 감독의 지휘 아래 7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도전한다.
- KB손해보험 스타즈
2023/24 시즌 KB손해보험은 공격, 높이, 수비 등에서 모두 약점을 드러내며 리그 최약체로 전락했다. 계속된 부진으로 '승점 자판기'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며 창단 첫 꼴찌라는 불명예를 피하지 못했다. KB손해보험은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스페인 출신의 미겔 리베라 감독을 영입하며 외국인 감독 열풍에 동참했다.
KB손해보험은 새 시즌 도약을 위해 선수단 정비에 나섰다. 먼저 골머리를 앓았던 미들 블로커 포지션 보완을 위해 차영석과 박상하를 데려왔고, 아시아쿼터도 맥스 스테이플즈로 교체했다. 외국인 선수는 비예나 그대로 간다.
직전 시즌에 비해 활용할 수 있는 공격 자원도 다양해진 것도 긍정적이다. 2년 차 윤서진이 컵대회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였고, 기존에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용했던 황경민도 있다. 만약 스테이플즈가 컵대회에서 보인 부진을 털어내지 못한다면 두 선수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즌 중반에는 군복무를 마친 나경복과 황택의까지 팀에 합류해 더욱 탄탄한 스쿼드를 구성하게 될 전망이다. 한 시즌 만에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KB손해보험이 3시즌 만에 봄배구행 티켓을 따낼 수 있을까?
- 삼성화재 블루팡스
지난 시즌 삼성화재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즌을 보냈다. 1라운드에만 5연승을 내달리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얇은 뎁스로 인한 뒷심 부족으로 최종 6위로 정규리그를 마무리했다.
김상우 감독의 지휘 아래 봄배구 복귀를 노리는 삼성화재는 비시즌 기간 선수단 재구성에 돌입했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한 노재욱을 붙잡았고, 트레이드를 통해 이시몬과 조국기를 영입했다. 또한 높이 강화를 위해 국가대표 출신 미들 블로커 김재휘까지 데려왔다. 아시아쿼터에서는 205cm의 장신 아포짓 스파이커 알리 파즐리를 선택해 공격력 향상을 꾀했다.
하지만 새 시즌 전력을 꾸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초 삼성화재가 지명했던 마테이 콕이 무릎 부상을 당해 교체가 불가피해진 것. 결국 삼성화재는 마테이를 방출하고 불가리아 출신의 아웃사이드 히터 블라니미르 그로즈다노프를 선택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전력으로 KOVO컵에 참가한 삼성화재는 조별리그에서 전승을 거두며 선전했다. 비록 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새 외인 선수 그로즈다노프가 부상으로 인해 결장한 것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성과였다. 컵대회에서 희망을 본 삼성화재. 과연 7시즌 만에 봄배구 무대를 밟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3. 하위권 경쟁이 유력한 '2약'
- 한국전력 빅스톰
한국전력은 2021/22 시즌을 시작으로 2년 연속 봄배구 진출에 성공하며 약체 이미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봄배구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6라운드에서 4연패를 기록하며 스스로 봄배구행 티켓을 발로 찼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전력 유출이 적지 않은 한국전력이다. 핵심 멤버인 세터 하승우와 리베로 장지원이 입대로 자리를 비우게 됐다. 여기에 베테랑 세터 김광국까지 은퇴해 세터 자원이 마땅치 않았던 한국전력은 아시아 쿼터를 통해 일본 출신의 세터 야마토 나카노를 영입, 급한 불을 껐다. 다만 손발을 맞출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탓인지 컵대회에서는 야마토와 공격수들의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다른 팀에 비해 공격진이 약한 것도 한국전력의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새 외인 선수 루이스 엘리안은 컵대회 3경기에서 63득점, 공격 성공률 52.68%를 기록하며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엘리안을 받쳐줄 아웃사이드 히터의 부재가 아쉬웠다. 한국전력이 위력적인 삼각편대를 구성하지 못한다면 올 시즌에도 봄배구 진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OK저축은행 읏맨
지난 시즌 오기노 마사지 신임 감독 체제로 새롭게 출발한 OK저축은행은 창단 첫 KOVO컵 우승부터 8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진출까지 이뤄냈다. 서브의 위력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오기노표' 범실 없는 배구가 제대로 통한 것이다.
하지만 올 시즌 OK저축은행의 전력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비시즌 주전 세터로 활약했던 곽명우가 사생활 문제로 임의 해지됐다. 이민규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 있고, 강정민과 박태성은 경험이 부족한 신인급 선수이니만큼 시즌 내내 세터 문제가 OK저축은행을 괴롭힐 수 있다.
레오와의 결별이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오기노 감독은 공격 루트 다양화를 위해 과감하게 레오와의 재계약을 포기했지만, 예상보다 새 외인 마누엘 루코니의 공격력이 저조하다.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서는 세터의 안정적인 경기 조율 아래 루코니-장빙롱-신호진으로 구성된 삼각편대의 고른 활약이 필요하다.
4. 2024/25 시즌 판도 예상
올 시즌 남자부는 2강 3중 2약 구도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블랑 체제로 개편한 현대캐피탈과 왕조 건설에 성공한 대한항공이 우승컵을 두고 경쟁을 펼칠 것이 유력하다.
강력한 공격력과 끈끈한 조직력을 갖춘 현대캐피탈이 우승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지난 4시즌 간 이어졌던 대한항공의 독주 모드도 끝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주전 선수진이 탄탄한 우리카드를 비롯해, 비시즌 취약 포지션을 확실히 보강한 KB손해보험과 삼성화재도 봄배구 경쟁에 참전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24/25 시즌에는 강공을 앞세운 현대캐피탈이 대한항공의 통합 5연패를 막고 우승컵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